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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승민 감성 에세이
비가 추적대는 가을 일요일, 우연히 튼 화면 속에서 오랜만에 아네트 베닝을 만났다. 1991년 영화 《헨리 이야기》의 짧게 압축한 영상이었지만, 남편의 기억과 삶이 무너진 자리에서 묵묵히 품을 내어주던 아내 '사라'의 모습은 순식간에 시간을 거슬러 나를 끌어당겼다. 같은 해 《벅시》에서 선보였던 화려하고 치명적인 버지니아 힐과 같은 배우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그 눈빛에는 깊은 온기와 단단함이 서려 있었다.아네트 베닝의 아름다움은 단순히 화려한 외형에 있지 않다. 인품과 교양이 아늑하게 스며 나온 듯한 격조 높은 품위, 그리고 단아함 속에 내재된 지적인 아우라. 다이안 레인이 시선을 단숨에 잡아 들이는 섹시한 우아함이라면, 아네트 베닝은 차분한 눈빛과 미소로 화면 전체에 묵직한 미인(美人)의 결을 채워..
토요일 늦은 밤내일의 약속이 월요일로 미뤄지면 한결 마음이 여유로워졌다가을의 정취가 무르익는 이 밤에 홀로 한 잔의 술을 마시며 나 만의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컴퓨터 화면을 스크롤 하다가 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잉그리드 버그만. 아주 어릴때.. 영화에 끌려 주말의 명화나 주말 극장의 흑백 티비 시절부터 심취해주말에 방영되는 프로는 안 빼놓고 봐온터라 당시의 유명 배우들은 거의 알고 있다그의 모습은 다른 배우에게서는 느낄 수 없는 청순함 속에 품위가 있었다.영화는 '카사블랑카'와 '가스등' 정도만 알고 있었지만 가스등은 내용은 거의 기억이 나지 않는다.단지 가스등은 남자가 여자를 가스라이팅하는 영화라는 것만 어렴풋이 떠오른다.어두운 술집, 뽀얀 담배연기, 바바리코트, 피아노.. 그리고 험프리 보가트와 잉그리..
내일은 10월 31일 시월의 마지막 날 수십 번의 같은 날을 지나는 동안 많은 이야기가 젖어들고가슴에 품은 가을의 낙엽들은해마다 노래가 되고 시가 되었다 이맘때가 되면 떠오르는 노래 「잊혀진 계절」 가사는 수십 년이 지나도 그대로인데 부르는 사람만 하나둘 달라져 갔고 사라졌다 내일 밤에도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 노래를 부를까 그 가운데 나도 있겠지 조금 더 나이 든 목소리로
오늘은 어떤 마음으로가을을 대할까. 아직 만추도 아닌데분위기와 공기는 겨울. 더 조용하고 더 어둡고높이도 알 수 없어. 낙엽으로 떨어지기 직전미동도 없다. 침묵의 동반자.멈춰버린 발걸음. 무슨 생각을 하는지나조차 알 수 없는 채 창밖만 물끄러미.
[테레비] 옹기종기 모여 앉아테레비 화면에 집중하던 아이들이 그립습니다. 테레비 주인은 싫은 내색 하나 없이뒤에서 흐뭇하게 아이들을 바라보았습니다.그러나 시간이 되면테레비 문을 드르륵 닫았습니다. 아쉬움을 뒤로한 채아이들은 각자의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그제야 테레비 주인은조용히 밥상을 폈습니다. * 50년도 더 지난 이야기지만 문득 떠 올려 봅니다. 순박하고 정이 넘치던 아름다운 시절.
인생이란저기로 부터 와서잠시 폼을 잡다가저리로 간다.인생은 덧없다가을의 정취는 잠깐돌아서는 발길이 쓸쓸하다가을은 원래 그런것이다루치아노 파바로티의 카루소가 들린다.
짙은 안개와 선율, 그리고 하늘의 한 줄기여느 때와 다름없이 시계 바늘이 6시 20분 시동을 걸었다. 아직 어둠의 잔향이 묵직하게 감싸고 있는 도시를 벗어나 고속도로를 올라탔다. 세상은 짙은 안개 속에 차분히 잠겨 있어 날이 밝아 오는지 마는지 알수가 없었다. 마치 꿈속에서 손에 잡히지 않는 환영을 따라 헤매는 듯 몽환적인 기분이었다. 손끝에 전해지는 핸들의 감촉과 차 안을 나지막이 채우는 라디오의 선율만이 나의 정신을 붙잡아 주는것 같다. 얼마쯤 달렸을까. 차령터널의 조명을 뚫고 빠져나오는 순간, 거짓말처럼 세상이 환하게 열렸다.눈앞에 펼쳐진 파란 하늘 한가운데, 수평을 그리며 곧고 가늘게 쭉 뻗은 한 줄기 구름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차가운 새벽 공기 속에서 유난히 맑게 그어진 그 궤적을 바라보는데, ..
70을 바라보는 나이에 무슨 걸그룹에 관심을 가지느냐 할 수도 있겠다. 나는 어릴 때부터 문화예술계에 관심이 많았지만, 정작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지 못했다. 그래서 내 딸들에게 은연중에 기대를 품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딸들은 내 생각과는 완전히 다른 각자의 길을 가고 있다.그래서일까. TV에 젊은 여성 아이들이 나오면 나도 모르게 내 딸들과 비교해 보게 되고, '저기에 내 딸이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마음을 늘 품어왔다. 요즘은 세상을 물들이고 있는 여성 아이돌 그룹 '리센느'에 푹 빠져 있다. 아니, 나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젖어 들었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그 아이들이 나오는 영상들이 알고리즘을 타고 계속 내 눈앞에 나타나니 자연스럽게 보게 되었고, 이제는 스스로 찾아보는 지경에 이..
오늘 연휴의 두 번째 날 오후, 음악을 듣는다. 이것저것... 장르를 넘나들다 영화음악이 손에 잡혔다. 그중에 '시네마 천국'의 잔잔한 선율이 흐른다. 워낙에 유명한 영화이고 감성을 자극하는 음악과 함께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잊지 못할 추억의 장면들이 떠오를 것이다.문득 나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 사람들은 이 영화를 이야기할 때 아름다운 향수나 세대를 초월한 감동적인 우정을 말한다. 하지만 내가 선율 끝에서 떠올린 것은 그 따스한 명장면들이 아니라, 수십 년이라는 세월이 만들어낸 '망각의 냉정함'이었다. 성인이 되어 로마에서 성공한 영화감독이 된 토토. 그는 수십 년 동안 고향 잔칼도를 단 한 번도 찾지 않았고, 자신을 그토록 아꼈던 알프레도에게 전화 한 통 먼저 걸지 않았다. 영화는 그가 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