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세이

발키리와 함께한 출근길

대전은하수 2025. 7. 17. 16:57

물로 세상을 심판하시리로다

'노아의 방주' 떠오를 만큼

무시무시하게 쏟아붓는 비.

밤새 내리기를 반복하며

날은 어김없이 밝아왔다.

출근길의 차 안,

지붕을 두드리는 빗소리가 요란하고

라디오에는 바흐의 무반주 첼로곡이 흐르지만

엄청난 빗소리에 묻혀버린다.

내 머릿속엔 바그너의

'발키리의 기행' 선율이 강타한다.

 

아홉 명의 발키리,

북유럽 신화에 반신반의의 여전사들이

말을 타고 전장에 등장하는 웅장한 관현악.

영화 '지옥의 묵시록'의 장면이 생생하게 되살아 난다.

빗발치는 포탄과 총알 속,

광기 어린 눈빛으로 혼자만 꿋꿋이 서

전투를 지휘하며 즐기는 장면은

빗속을 뚫고 나아가는 나와 겹쳐 보인다.

앞유리를 연신 닦아내는

와이퍼가 힘에 부친 듯 애처롭고

뿌옇게 서리는 습기를

연신 에어컨으로 닦아낸다.

바퀴가 일으키는 물보라는

파도를 가르는 서핑같이 느껴진다.

잠깐의 고요는 너른 네거리 고가도로

아래를 지나치는 순간뿐.

 

차들은 겁에 질린 듯 서행한다.

이 긴박한 순간을 즐기는 이는 나뿐인가.

주체 못 하는 흥분이 온몸을 옥죄어 온다.

갑천은 아직 많이 잠잠하다.

그러나 넘칠 듯 넘칠 듯하던

카이스트교를 건너던 그여름이 생각난다.

길지 않은 출근길

무사히 도착함에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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